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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dcinside.com mgallery dokpponghansabal 유고 내전 당시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계획했던 판도 내전 발발 당시 지도 세르비아의 목표 크로아티아의 목표 실제로 나눠진 판도 - dc official App 2024.04.04 웹문서 검색 더보기 기후위기 양안전쟁 세르비아 내전 스큐 50달러 비나이다비나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세르비아 대통령, 유고 내전의 나토 개입은 침략이었다. https://x.com/CatEmporor/status/1773761090888892588?s=20 X (formerly Twitter) X (formerly Twitter) x.com youblog.tistory.com 지식 발전소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코소보 분쟁의 발생 졌다. 유엔은 평화유지군을 파견했지만 상황 통제에 실패했고, NATO의 공습으로 세르비아를 굴복시켰다. 이는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사례로 꼽힌다. 연방 해체와 새로운 국가 탄생. 유고슬라비아는 내전 끝에 해체되었고,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2024.05.28 블로그 검색 더보기 blog.naver.com 명상수행...그 신비의 세계 속으로 세르비아 🇷🇸 - 보스니아 🇧🇦 전쟁, 코소보 🇽🇰 전쟁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크로아티아 🇭🇷 - 보스니아 🇧🇦 전쟁, 숨겨진 유고 내전의 잔혹사 - 알려지지 5 세르비아인의 것으로 분할하자는 그라츠 조약(Treaty of Graz)에 합의하게 된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은 4차의 시기로 1차 세르비아-크로아티아 전쟁, 2차 세르비아-보스니아 전쟁 (일명 보스니아 내전), 3차 보스니아-크로아티아 전쟁 (일명 헤르체고비나 내전), 4차 세르비아-코소보 전쟁 (일명 코소보 전쟁)으로 분류가... 2024.05.21 제이슨 시사 분야 크리에이터 유고 내전, 세르비아만의 책임을 넘어서 근본적인 문제로 - 실패한 전쟁사-12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기원과 유고슬라비즘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의 뿌리는 드라구친 디미트리예비치 대령이다. 그에 대해 짧게 설명하고 가자면 1903년 알렉산더 오브레노비치 왕과 왕비인 드라가 마시나 및 그들의 친인척이 계속 자행한 권력형 부정축재에 맞서 쿠데타를 일으켜 왕과 왕비를 죽이고 카라조르지예 가문의 페타르를 왕으로 옹립한 경력이 있는 인물이다. 디미트리예비치 대령은 쿠데타 이후에도 막후에 비선 실세였고 파시치 수상이 보스니아 문제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타협하자 흑수단(단결 혹은 죽음)이라는 테러 조직을 만들어 각종 공작을 감행한다... 보론: 흑수단과 대세르비아주의의 조직화 세르비아 지역은 본격적으로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우다가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가 커져나갔었다. 이는 오스만으로부터 독립에 성공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는데 20세기 초반에 들어서는 민족주의가 더욱 급진화된 '대세르비아주의' 단체들이 등장했는데 각자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인민 방위대 (Narodna Odbrana) - 1908년에 창설된 단체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 보스니아 지역의 세르비아인들을 돕기 위해 설립. 이들은 세르비아 육군 대위인 밀란 바시치를 영입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인사들에 대한 테러... 크로아티아의 복수: 우스타샤 유고슬라비아가 2차세계대전으로 추축국에 지배받게 되자 유고 정부는 미하일로비치 대령을 앞세워 체트니크를 조직했다. 체트니크의 본래 뜻은 오스만 지배 시절 무장 저항하던 게릴라 단원의 의미였다. 체트니크들은 카라조르지예 왕조에 충성을 당하는 조직으로 흑수단의 정신적 후계자였다. 세르비아인들은 1차세계대전에서 인구의 20%를 잃었고 이번 대전에서도 추축국의 지원을 받는 크로아티아인들에게 보복당할 걸 두려워했다. 그들은 티토의 파르티잔과는 달리 독일군보다 크로아티아인들의 더 원수였다. 한편 1941... 위대한 지도자의 사망, 그리고 무너진 꿈 티도는 가히 위대할 만한 자격이 있는 지도자였다. 체트니크와 우스타샤 간 서로의 병림픽 중에도 묵묵히 파르티잔을 이끌어 대세르비아주의와 대크로아티아주의로 분열된 유고슬라비아를 다시 기강을 바로 세웠다. 그는 공산주의자였지만 소련과도 어느정도 선을 그었던 지도자였고 6.25 당시에도 공산주의 지도자임에도 북침설을 전면적으로 부정했다가 스탈린주의자들에게 온갖비난을 당했다. 그리고 무작정 중공업 우선 노선이던 현실사회주의와는 달리 경공업에도 일정 부분 투자하고 노동자 자주 경영을 보장해주는 실험적인... 보론: 유고 연방군은 왜 밀로셰비치와 발 맞추었는가? 우선 유고 연방군의 인적 구성을 보면 장교가 세르비아인이 70%가 넘는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세르비아에 친화적일 수 밖에 없었으며 연방군은 사회주의를 수호하는 기관으로써 1990년 이후로도 사회주의 체제 유지를 밀고 나간 세르비와와 잘 맞을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연방군이 해체될 경우 군 조직이 유지가 안되고 특권도 사라지며 방위 산업체 통제권도 끝나기에 연방군 수뇌부는 1990년 12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에서 연방 존속을 주장하는 공산당이 승리하자 환영했다. 국방장관 벨리코 카디예비치는 아예 성명까지 냈다... 우스타샤의 망령, 프라뇨 투지만 일각에서는 말할 거다. 유고 내전에서 크로아티아를 비난하는 건 마치 2차세계대전에서 추축국을 옹호하기 위해 연합국을 비판하는 것과 같지 않냐고 말이다. 그러나 추축국이 악에 가깝다 해도 그것이 원자폭탄 투하, 드레스덴 공습, 베를린 강간, 행정명령 9066호...연합국의 만행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한 사실이다. 마친가지로 밀로셰비치가 도저히 상종 못할 인간 쓰레기라 할 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투지만이 피해자거나 세르비아 침략자들로부터 국민을 지켜낸 영웅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 투지만의 정당은 이제트베고비치의 이면 옛 유고연방 주재 미국 대사였던 지머만은 1992년 1월, 크로아티아 신문 <다나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제트베고비치를 이슬람 근본주의자라 부르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이란에서의 경험을 통해 근본주의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으며 따라서 이제트베고비치가 일반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통칭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라고 믿지 않는다. 사실 그는 최악의 상태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온건한 정치인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마냥 온건하지 않다. 이제트베고비치는 보스니아가 독립을 선언할 경우에 많은... 마피아 소굴인 코소보 해방군(KLA) 코소보 해방군은 유고 내전 내내 최대 피해자로 평가받았었다. 그나마 투지만 같은 경우는 악행이 좀 알려지긴 했지만 코소보는 아직도 세르비아한테 맞고 사는 불쌍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일례로 2021년 이후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고 특히 국경에서 무력충돌이 벌어지며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아예 대놓고 독립 보장 안한다고 하는 지경에 이른 상황에서 가장 크게 비난받는 건 코소보가 아닌 세르비아였다. 코소보는 건국 과정이 상당히 지저분했다. 코소보 해방군의 지도자 하심 타치는 마약 거래와... 나토의 전쟁 범죄 밀로셰비치를 무릎 꿇린 것은 사라예보 포위전에서 항전하던 보스니아의 시민들도, 코소보의 해방군도, 크로아티아의 자칭 국부 투지만도 아닌 나토였다. 당시는 빌 클린턴 정부였었고 소련이 붕괴되어 러시아 연방이 들어서고 보리스 옐친이 지도자로 있었기에 세르비아를 때릴 수 있는 딱 안성맞춤인 환경이었다. 미국은 유고 내전에 지상군과 공군을 투입하였고 신생 국가 보스니아와 코소보를 지원했다. 보스니아 내전 때부터 나토는 1,026발의 폭탄을 투하하고 48개의 표적에 미사일을 발사하며 공습을 감행했는데 이게 코소보... 세르비아는...다들 알지? 이때까지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 같은 유고 내전에서 반 세르비아 진영에 있던 국가들한테 극딜(?) 박았는지라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세르비아 어떻게든 쉴드 쳐줄려고 저런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근데 이건 하나 확실하게 하자면 세르비아라고 해서 더했으면 더했지 저들보다 덜하진 않았다. 스릅스카 시절 믈라디치나 아르칸의 의용방위군이나 둘다 끔찍하긴 매한가지였고 아무리 투지만과 이제트베고비치가 유고 연방 분열에 책임이 커도 애초에 밀로셰비치가 스탐볼리치 대통령을 몰아내며 반관료 혁명이란 명분으로... 맺음말: 반복되는 비극 유고 내전이 끝난지 20년이 넘었다. 최악의 전범 밀로셰비치는 감옥에서 옥사했고 세르비아는 범죄에 대한 대가로 받았던 경제제재로 인해 아직도 피해가 남아있으며 유럽연합 가입도 거부당한, 말 그대로 발칸 반도의 왕따인 처지다. 코소보는 여전히 유럽의 최빈국 상태에서 못벗어나고 있으며 세르비아와의 충돌도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는 2021년도 이후부터 몇번이고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국경에는 군대가 집결했던 적이 있었으며 코소보 정부가 세르비아계 주민들을 탄압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유럽의 화약고'로 주목... 13 일각에서는 말할 거다. 유고 내전에서 크로아티아를 비난하는 건 마치 2차세계대전에서 추축국을 옹호하기 위해 연합국을 비판하는 것과 같지 않냐고 말이다. 그러나 추축국이 악에 가깝다 해도 그것이 원자폭탄 투하, 드레스덴 공습, 베를린 강간, 행정명령 9066호...연합국의 만행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한 사실이다. 마친가지로 밀로셰비치가 도저히 상종 못할 인간 쓰레기라 할 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투지만이 피해자거나 세르비아 침략자들로부터 국민을 지켜낸 영웅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 투지만의 정당은 세르비아 내전 역사 2023.07.30 브런치스토리 검색 더보기 bluemovie.tistory.com 푸른여우가 본 세상 '슬픔과 매력'의 땅 발칸반도를 가다-세르비아 베오그라드⓹ 13 그대로 보존돼있기도 합니다. 베오그라드 어린이들의 죽음...안타까운 죽음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죠.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세르비아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을 사주하고 지원해 죽게 만든 그 수많은 어린이들도 "어린이였을 뿐"이었습니다. 세르비아 내의 이슬람 자치지역인 코소보에서 일어난 분리... 2024.02.09 asdg35hjhgj.tistory.com 431 코소보 수도 위치 지도 인구 크기 사태,세르비아 내전 언어 대통령 7 코소보 정부와 세르비아가 자동차 번호판과 신분증 등의 문제로 다시 격돌하고 있다고 AP통신과 현지 언론들이 2022년 8월 1일 보도했답니다. 코소보정부는 1일 오전에 이웃 세르비아의 사주로 국내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북부 지방의 도로를 봉쇄하는 등 자동차번호판과 신분등 문제로 소요를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 2022.08.01 통합웹 더보기
서비스 안내 스토리의 글을 대상으로 검색결과를 제공합니다. 자세히보기 박필우입니다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보스니아 내전이란 이름의 살육 살육의 전초 나치와 파시즘처럼 배타적민족주의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도 집단으로 미친 시대였다. 찰스 맥케이가 《대중의 미망과 광기》에서 한 말이다. “인간은 무리지어 생각하는 동물이다. 미칠 때는 집단으로 미쳤다가 제 정신으로 올 때는 한 사람씩 천천히 온다.” 혹자는 돌아올 때 가장 앞서 오는 자가 선지자라고 한다. 이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비극은 예견되었다. 유럽이나 미국이 이를 간파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살육이 시작된 이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와 비교해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까닭... 보스니아 내전이란 이름의 살육 20세기 가장 추악한 전쟁 보스니아 분쟁은 사실 명칭부터 명확하게 해야 한다. 보스니아 내전, 보스니아 분쟁이라고 하지만, 보스니아 전쟁이 맞다. 내부 갈등으로 촉발된 듯하지만, 세르비아 연방군과 크로아티아 방위군의 전격적인 지원 아래에서 이루어진 침략전쟁이자, 가장 악랄한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대 이슬람을 겨냥한 인간사냥이었다. 세르비아만이 가해자가 아니다. 크로아티아 역시 보스니아에 씻지 못한 상처를 남겼다.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핵심은 보스니아를 손에 넣어야 완성된다는 전제가 한 번도 변한... 5 20세기 가장 추악한 전쟁 보스니아 분쟁은 사실 명칭부터 명확하게 해야 한다. 보스니아 내전, 보스니아 분쟁이라고 하지만, 보스니아 전쟁이 맞다. 내부 갈등으로 촉발된 듯하지만, 세르비아 연방군과 크로아티아 방위군의 전격적인 지원 아래에서 이루어진 침략전쟁이자, 가장 악랄한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대 이슬람을 겨냥한 인간사냥이었다. 세르비아만이 가해자가 아니다. 크로아티아 역시 보스니아에 씻지 못한 상처를 남겼다.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핵심은 보스니아를 손에 넣어야 완성된다는 전제가 한 번도 변한... 브런치북 맛보기 세계사 4 보스니아내전 민족주의 세르비아 2024.05.21 브런치스토리 검색 더보기 adipo.tistory.com 잡스9급/집단지성/두문암기/기출해설/공무원 합격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관계, 유고 내전, 티토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양국은 유고슬라비아 내전기간에 갈등 역사적 관계 중세 슬라브족들이 6세기 ~ 7세기부터 발칸 반도로 이주하면서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지역에도 슬라브족들이 많이 이주했다. 슬라브족들은 유고슬라비아 지역에 이주하면서 현지주민들과 통혼이 자주 이뤄졌다. 그리고 슬라브족들이 많이 이주한... 2022.07.16 티스토리 검색 더보기 story.kakao.com 권진우 권진우 - 카카오스토리 20 크로아티아.. 삼십여년전에 세르비아와 내전을 겪고 2년전에 지진을 겪은 도시라고하기에는 조용하고 차분하다.. 단지 최근의 지진으로 성 자그레브 성당의 화려한 400년의 두탑이 무너져 공사중, 성 마르크 성당... 2023.07.18 카카오스토리 검색 더보기 인문・교양 크리에이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