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namu.wiki 소손녕 - 나무위키 997) 요나라(= 거란)의 장군으로 본명은 소항덕(蕭恒徳) 또는 소긍덕(蕭恆德)이었다. 한국에서 부르는 소손녕의 손녕(遜寧)은 소항덕의 자로,《고려사》에서 본명이 아닌 소손녕으로 나오기에 이 이름으로 더... 개요 생애 여담 대중매체 2024.04.12 웹문서 검색 더보기 안융진 전투 - 나무위키 서희 - 나무위키 instiz.net pt 서희랑 담판지었던 소손녕이 어떻게 죽었는지 앎? - 인스티즈(instiz) 이슈 카테고리 https://hygall.com/575283124 아놔 난 오늘 처음 알았네 소손녕이 일찍 죽었다고만 알아서 그런줄 알았는데 소손녕이 부마였는데(태후의 조카이기도 함)부인이 아팠음 그러니까 태후가 자기 궁녀를 보내서... 2024.03.14 pann.nate.com talk 고거전에는 왜 소손녕이 안 나옴? | 네이트 판 고려거란 1차 전쟁때 신교관(신적인 외교관이라는 뜻) 서희에게 설득당해 돌아갔던 거란 장수 '소손녕' 왜 2,3차 고려거란전쟁을 다룬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는 안 나오는걸까? 소손녕은 야율융서 사돈인데... 2024.02.20 blog.naver.com 라이브러리 거란 공주에게 청혼한 고려 성종, 서희담판 소손녕의 황당한 최후 (1) 소손녕 간통사건 11 모든 관직을 추탈한 후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끝냈다. 귀주에서 고려의 강감찬에게 무참하게 깨졌던 이 소배압의 동생이 소손녕인데 서희의 담판의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유명하다. 소손녕은 1차 여요전쟁 때 동경유수로서 거란의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다. 본명은 소항덕(蕭恒徳) 또는 소긍덕(蕭恆德)으로 자는... 2024.04.10 블로그 검색 더보기 blog.naver.com 산하의 썸데이서울 서희와 소손녕, 그리고 오늘 4 서희와 소손녕, 그리고 오늘 . 960년 중국 대륙에 송나라 왕조가 들어선다. 고려는 송나라가 들어서자마자 사신을 보내 송나라와 관계를 맺는다. (962, 고려 광종 13년) 이후 972년 고려 광종은 다시금 송나라에 사신단을 파견하게 되는데 그 정사(正使) 즉, 사신단장으로 임명된 이는 당시 나이 서른의 서희(942~998... 2024.05.02 통합웹 더보기
서비스 안내 스토리의 글을 대상으로 검색결과를 제공합니다. 자세히보기 권교사 교육 분야 크리에이터 서희는 정말 말싸움으로 이겼을까? 4 것이다. 당시 거란군의 지휘관은 소항덕(고려사에 기록된 손녕은 이름이 아니라 자다. 그런데 뭐 유비나 유현덕이나 이이나 이율곡이나. 소항덕이나 소손녕이나)으로 거란의 다섯 수도중 하나인 동경(요령성)의 유수로, 요즘으로 치면 인천광역시장쯤 되는 위치의 인물이다. 당시 동경은 고려와 여진이라는 거란 최대의... 고려 역사 전쟁 2024.04.05 브런치스토리 검색 더보기 busa1000.tistory.com 역사 블로그 고려 역사 최고의 외교관 서희 장군의 탄생 및 소손녕과의 담판 서희의 탄생 배경 후고구려의 궁예를 몰아낸 후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고 싶었던 왕건은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고구려의 옛 영토였던 서북쪽의 발해지역을 멸망시킨 거란이 고려의 왕건에게 사신 30명을 보냈으나 유배 보내고 함께 보낸 낙타 50마리도 개경밖 다리에서 굶어 죽게 합니다. 거란과 대치중인 송과 가깝게 지낸 왕건은 이 정도로 거란과의 친선을 원하지 않았고 배척했습니다. 942년 이 사건이 있던 해에 서희는 탄생했습니다. 서희는 광종대에 임금을 보필하던 최고책임자인 서필의 아들로 열 아홉살이 되던 해인... 거란 소손녕과의 담판 이로써 서희와 소손녕의 3차 회담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거란의 소손녕은 서희를 보자마자 임금의 나라인 거란의 적장 소손녕에게 신하의 나라인 고려의 서희가 절을 먼저 올려야 한다는 억지를 부리자 서희는 양쪽의 국가를 대표해 대등한 관계로 대면하는 사람들이 한쪽에 굽히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숙소로 돌아가 꿈쩍도 하지 않자 소손녕이 대등한 관계로 회의하는 것을 허락하게 됩니다. 고려와의 전쟁이 최종목적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서희의 기본 성격대로 강인하고 더욱 대범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배울점 서희의 탁월한 외교능력은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군사를 이끌어 전쟁을 하거나 싸우지 않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생각나듯이 서희장군은 상대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현명하게 대처한 지혜와 언변 그리고 대범함까지 갖춘 최고의 외교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말로써 상대를 제압하고 두 손 두 발 들게 만들어 오히려 나한테 유리한 쪽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한 것은 서희가 탁월한 지략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증명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로써 서희와 소손녕의 3차 회담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거란의 소손녕은 서희를 보자마자 임금의 나라인 거란의 적장 소손녕에게 신하의 나라인 고려의 서희가 절을 먼저 올려야 한다는 억지를 부리자 서희는 양쪽의 국가를 대표해 대등한 관계로 대면하는 사람들이 한쪽에 굽히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숙소로 돌아가 꿈쩍도 하지 않자 소손녕이 대등한 관계로 회의하는 것을 허락하게 됩니다. 고려와의 전쟁이 최종목적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서희의 기본 성격대로 강인하고 더욱 대범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2024.03.19 티스토리 검색 더보기 story.kakao.com 浮草 金在千 浮草 金在千 - 카카오스토리 6대 成宗(성종)때인 993년, 거란족의 遼(요)나라가 80만 대군을 앞세우고 침략했다. 적장 蕭遜寧(소손녕)이 밀고 내려오자 두려워한 중신들이 大同江(대동강) 이북의 땅을 떼어주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이 때... 2024.03.13 카카오스토리 검색 더보기 교육 크리에이터 보기
문인, 혹은 야인 blog.naver.com/sseug__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