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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u.wiki 미겔 앙헬 앙굴로 - 나무위키 스페인의 전 축구선수. 발렌시아 CF의 레전드로 은퇴 이후에는 팀의 수석코치까지 맡았다. 국내 축구팬들에게는 주 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 외에도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가능한 발렌시아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알려졌었다. 이름 미겔 앙헬 앙굴로, Miguel Angel Angulo 본명 미겔 앙헬 앙굴로 발데레이, Miguel Ángel Angulo Valderrey 출생 1977년 6월 23일, 스페인 아스투리아스주 오비에도 국적 스페인 신체 키 181cm 개요 클럽 경력 국가대표 경력 2024.05.17 웹문서 검색 더보기 축구왕 슛돌이 - 나무위키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 나무위키 librarysheep.com 슬기로운 취미 생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A매치 최다 득점 선수 상위 10명[차범근, 황선홍, 손흥민, 이동국, 김도훈] 1. 차범근 136경기 58골 출처=KFA 1971년 18세의 나이로 U-20 대표팀에 선발된 것을 시작으로 1972년 국가대표팀에 뽑혀 태국에서 열린 AFC 아시안컵에 참가했습니다. 이후 1978년까지 대표팀의 중심공격수로 활약하며 136경기에서 58 득점을 했습니다. 1978년까지 대표팀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던 차범근은 1979년부터 1989년까지 10년간 분데스리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했습니다. 1986년에는 잠시 대표팀에 복귀해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했습니다. 1999년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20세기 최고의 아시아 축구 선수에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2. 황선홍 103경기 50골 출처=KFA 1968년생으로 1988년부터 2002년까지 14년간 항상 대표팀의 최전방 공격수로 뛰며 A매치 통산 103경기 50골로 득점 2위입니다. 홍명보와 함께 한국 축구 사상 첫 월드컵 4회 연속 출전을 이루어냈습니다. 선수시절 부상도 많이 당했지만 국가대표로서 황성홍은 붙박이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특히 한일전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총 네 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넣었습니다. 은퇴 후 지도자로서 아쉬운 점이 많았는데요, 2024년 U-23 아시안컵 8강전 패배로 한국이 올림픽 축구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팬들의 3. 손흥민 125경기 46골 출처=KFA 1992년생으로 손흥민은 2010년 12월 30일 시리아와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했습니다. A매치 최다 득점 10위권에 유일한 현역 선수로 125경기에 출전하여 46골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현역선수라 은퇴할 때까지 몇 골을 더 추가할지 기대가 됩니다. 18세에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월드컵 데뷔골을 기록했습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주장을 맡아 한국 축구 역대 3번째 16강이라는 대기록을 이끌었습니다. 4. 박이천 88경기 36골 출처=KFA 1967년 U-20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된 박이천은 1969년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1974년 태국 킹스컵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팀에서 물러날 때까지 A매치 경기 88경기에서 36 득점을 했습니다. 170cm가 되지 않는 자그마한 체구지만 폭발적인 스피드를 바탕으로 상대 수비를 헤집는 플레이를 선보이며 대표팀의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특히 1972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는 5경기에서 4골을 뽑아내며 최다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스트라이크도 아니지만 문전에서 스피드를 살린 돌파에 이어 날카로운 슛으로 골을 많이 5. 김재한 58경기 33골 출처=KFA 1947년생으로 1970대 한국축구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공격수 중 한명입니다. A매치 58경기에 출전 33골을 득점했는데 경기당 평균 득점률이 0.57이나 됩니다. 지금도 장신에 속하는 190cm의 키는 1970년대에는 그 어떤 선수도 감히 대적을 하지 못할 정도의 높이였습니다. 5. 이동국 105경기 33골 출처=KFA 1979년생으로 A매치 105경기에 출전 33골을 득점했습니다. 2000년 아시안컵 득점왕을 달성하며 국가대표로서 인상적인 활약을 했으나 월드컵과는 인연이 많이 없었던 비운의 스타이기도 합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십자인대 부상으로 경기에 참여조차 못했습니다. 그러나 K리그에서는 전설적인 선수로 MVP, 신인왕, 득점왕, 도움왕을 모두 석권했고 등번호 20번은 전북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습니다. 7. 김도훈 72경기 30골 출처=KFA 1970년생으로 1988년 청소년대표로 선발되어 첫 대표팀에 데뷔했습니다. 성인팀 데뷔는 1994년 우크라이나와의 친선경기에 데뷔하여 A매치 72경기에서 30골을 기록했습니다. 큰 키와 피지컬을 이용한 포스트 플레이를 잘하는 공격수로 활약을 했으나 2002년 월드컵에서는 황선홍에 밀려 선발되지 못했습니다. 플레이스타일 자체가 활동량이 많거나 빠른 편이 아니어서 히딩크 감독이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7. 최순호 96경기 30골 출처=KFA 1962년생으로 1980년대 한국 축구의 에이스이자 대한민국 축구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로 평가받습니다. 스트라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로 주로 뛰었으며 A매치 96경기에서 30골을 넣었습니다. 특히 1986년 멕시코 월드컵과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7. 허정무 104경기 30골 출처=KFA 1955년생으로 1973년부터 1974년 청소년 대표를 지내고 1974년부터 1986년까지 국가대표 선수를 했으며 A매치 87경기에서 30 득점을 했습니다. 축구를 시작한 지 4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고 유럽의 명문 PSV 아인트호벤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32년 만에 대한민국을 월드컵에 진출시킨 주역이 바로 허정무입니다. 국가대표팀에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준 해는 1977년이었습니다. 바레인, 리비아를 상대로 각각 해트트릭까지 기록하고 박대통령배 개막전에서 2골을 몰아넣으면서 12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연세대 1학년때부 10. 최용수 69경기 27골 출처=KFA 1971년생으로 A매치 통산 69경기에서 27골을 넣었습니다. 월드컵 지역 예선이나 아시안게임 등 아시아 쪽에서 최용수는 대단한 공격수였습니다.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는 조별 예선부터 16강 쿠웨이트 전까지 7골을 넣으며 절정의 기량을 보였으나 아시아를 넘어서면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10m 노마크 찬스에서 골대 위로 독수리 슛을 날리는 바람에 팬들에서 원망도 많이 받았습니다. 10. 이영무 85경기 27골 1953년생으로 A매치 85경기에서 27골을 넣었습니다. 뛰어난 재능이나 좋은 체격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으나 체력이 좋고 성실함과 노력으로 197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미드필드였습니다. 10. 김진국 97경기 27골 1951년생으로 A매치 97경기에서 27골을 넣었습니다. 19세때 청소년 국가대표를 시작했고, 165cm 단신으로 빠르고 기술이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차범근의 뒤를 이어 독일에 진출한 두 번째 한국 선수이나, 1부가 아닌 2부 리그에서 활약했습니다. 이상 한국 축구 통산 득점 선수 10명에 대해 소개해드렸습니다. 수많은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축구 팬들에게 큰 기쁨과 감동을 선사해 주었던 선수들이었습니다. 한국 축구가 아시아를 넘어 다시 한번 영광을 되찾기를 바랍니다. 2024년 아시아 축구 선수 몸값 순위 TOP 10 2 출처=KFA 1968년생으로 1988년부터 2002년까지 14년간 항상 대표팀의 최전방 공격수로 뛰며 A매치 통산 103경기 50골로 득점 2위입니다. 홍명보와 함께 한국 축구 사상 첫 월드컵 4회 연속 출전을 이루어냈습니다. 선수시절 부상도 많이 당했지만 국가대표로서 황성홍은 붙박이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특히 한일전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총 네 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넣었습니다. 은퇴 후 지도자로서 아쉬운 점이 많았는데요, 2024년 U-23 아시안컵 8강전 패배로 한국이 올림픽 축구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팬들의 이동국 황선홍 차범근 최순호 대한민국 축구 허정무 손흥민 대한민국 축구 골순위 축구 최다 득점자 2024.05.19 블로그 검색 더보기 bsj2055.tistory.com 축구하는 블로그 [스포츠몹] 축구 역사상 여자 동성애 선수들 15 상대로 8강전에서 2골을 넣어 2-1로 승리한 뒤 그녀는 외쳤다, “가자 동성애자들아!” 그리곤 말을 이었다. "팀에 동성애자가 없인 대회에서 승리할 수 없다...그가 캠페인 동안 했던 어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9년, 미국축구협회는 애국가 연주 때는 기립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라피노는 여자 선수... 2024.04.07 박수용의 토르난테- 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 스포츠 분야 크리에이터 축구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30위~21위 10 2008 8강전에서도 포르투갈을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하며 포르투갈 킬러로 명성을 날렸다. 중앙 미드필더 보직 변경 이후에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팀의 4강 진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드림팀에 선정되었으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뛰어난 중원 지휘 능력을 앞세워 우승의 방점을 찍었으며 클럽에서는 부진하던... 크로스 비에이라 피리 슈바인슈타이거 캉테 로이 킨 중앙 미드필더 롭슨 중미 랭킹 하나피 2024.02.01 우루과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센터백 Top 20 v.daum.net 나남뉴스 "40년만에 대참사" 대한축구협회, 올림픽 진출 실패 '죄송' 부글부글 민심 - 콘텐츠뷰 미래를 약속했다. 앞서 황선홍 감독이 지도한 한국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은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인도네시아와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졸전을 거듭했다. 이후 이어진... 2024.04.27 blog.naver.com 포천FC 송찬우의 블로그 [남자 U-20][한국 축구사 오늘] 세계 청소년 대회 4강에 오르다 2 전 오늘, 1983년 6월 11일은 한국 축구가 사상 처음으로 FIFA 주최 세계 대회에서 4강 진출을 이뤄낸 날입니다. 이날 멕시코에서 열린 1983년 세계 청소년(U-20) 축구대회 8강전에서 대한민국의 젊은 태극전사들은 우루과이를 2-1로 꺾고 준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했습니다. 세계 청소년(U-20) 축구선수권대회는... 2023.06.14 통합웹 더보기
서비스 안내 스토리의 글을 대상으로 검색결과를 제공합니다. 자세히보기 story.kakao.com 정승남 정승남 - 카카오스토리 2023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8강전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경기에서 연장전 끝에 1:0...팀 선수들이 자축하고 있다(연합뉴스) 1977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출발한 U-20 월드컵은 이번... 2023.06.05 카카오스토리 검색 더보기 brunch.co.kr 낭만 테크니션 평행이론 숙적 일본을 꺾고 8강전에서 세네갈과 연장전을 넘어 승부차기까지 가는 승부에서 드라마 같은 승리를 하고 4강에 진출하자 온 국민은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의 4강 신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대회를 36년 전 멕시코 청소년 축구대회와 평행이론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당시 박종환... 이론 링컨 공감에세이 2020.06.20 브런치스토리 검색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