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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u.wiki 수안 김씨 - 나무위키 수안 김씨(遂安 金氏)는 구 안동 김씨(安東 金氏) 중시조(中始祖) 상락백(上洛伯) 김방경(金方慶)의 장자(長子) 김선(金宣)을 시조로 황해도 수안군을 본관으로 하는 김씨이다. 인구 4,459명(2000년) 개요 분적(分籍)된 김씨 집성촌 실존 인물 인구 2023.09.20 웹문서 검색 더보기 구 안동 김씨 - 나무위키 김(성씨) - 나무위키 100.daum.net 백과사전 수안 김씨 성씨 정보 수안 김씨(遂安金氏)는 황해북도 수안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수안 김씨(遂安 金氏)는 안동 김씨(安東 金氏)에서 분적(分籍)되었다. 시조 김선(金宣)은 고려 때 전법판서 겸 상장군(典法判書 兼 上將軍)을 역임하고, 수안군(遂安君... 백과사전 검색 더보기 출처: 위키백과
blog.naver.com ::힐님의 행복세상:: 마장동김씨 동래점 부산수안역 근처 고깃집 5 친구들이랑 고기먹으러 부산수안역 근처 마장동김씨 동래점 갔어요 ^^ 가게내부깨끗하고, 여기고기 진짜 맛나거든요 고기구워주는 집은 많지만 여기처럼 200시간 이상 교육받은 전문서버가 제대로 구워주는집은 마장동김씨 동래점이 유일:) 모던하고 깨끗한 고깃집 - 마장동김씨 동래점 인테리어도 참 이쁘죠... 2024.04.26 블로그 검색 더보기 blog.naver.com jeongrogaksim의 도시건축산책 영덕군 강구면 원직리 <남영충 가옥(수안김씨 종가)> 33 당시 가옥의 등기부상 소유자가 안주인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명칭이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다.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관리가 이루어지면 '수안김씨 종가' 등으로 변경되어야 할 듯하다. 가옥의 주변은 넓은 밭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건물의 배치는 정방형에 가까운 대지에 토담으로 경계를 두르고 서측... 2023.04.13 blog.naver.com 개미실사랑방 (강진)판서공(휘 愃) 묘역 정화사업 준공 및 세향-안동김씨- 36 휘 資]는 증손 김정(金精)이 재당숙 김제안(金齊顔)과 함께 요승(妖僧) 신돈(辛旽)을 제거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여 후손들이 각각 수안김씨, 사천김씨로 분적되었습니다. ■ 차남 보문각대제학(휘 承用)은 시호가 충숙으로 슬하에 2남1녀를 두셨는데 -장남 첨의평리[휘 厚]는 상락군에 습봉되고, 슬하에 ①... 2024.05.11 cafe.daum.net 吾金.定獻公後.生員公(克禮)派宗會.구미당(九未堂) 상락김씨(上洛金氏) 김부는 부(阜)처럼 한자의 차이가 있다 여담이지만 사천시와 정읍시는 자매결연지역이다. 수안김씨(遂安金氏) 수안김씨(遂安金氏)는 상락김씨(上洛金氏)중시조(中始祖)상락백(上洛伯)김방경(金方慶)의 장자(長子) 김선(金宣)을 시조로 황해도 수안군을 본관으로 하는 김씨이다. 이 본관은 10,000명도 안되는 희귀본관... 2023.09.15 카페 검색 더보기 안동김씨(安東金氏) 한국인의 성씨 통합웹 더보기
서비스 안내 스토리의 글을 대상으로 검색결과를 제공합니다. 자세히보기 말그미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800년 역사가 서린 영덕 괴시리전통마을 59 오랜 역사와 깊이 있는 문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괴시마을의 역사는 고려말인 1260년경에 시작되었다고 해요. 함창 김씨가 터를 잡은 이후로 한산 이씨, 수안 김씨, 영해 신씨 등의 성씨가 차례로 정착하였어요. 이 성씨들 가운데 함창 김씨 김택의 외손인 목은 이색(1328~1396)이 외가마을인 괴시마을에서... 영덕 전통 한옥마을 2023.02.19 브런치스토리 검색 더보기 story.kakao.com 증산천지대도 증산천지대도 - 카카오스토리 77신성김씨시조:지선 인구2,262명 고려=지선(대제학)남보(판서) 조선=훈(이조판서) 78상주김씨시조:맹은 1,916명 79수안김씨시조:선 인구1,567명 고려관직=위(전리판서)득남(전리판서) 80수원김씨시조:풍언 인구... 2024.01.29 카카오스토리 검색 더보기 dldml2xhd.tistory.com 벽암두릉연가 안동-상락군개국공 충렬공 김방경(上洛郡開國公 忠烈公 金方慶),안동김씨 중시조 1. 가문, 출세 김방경의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고려사』 열전에서는 그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먼 후손이라고 밝혀두었다. 1212년(강종 원년) 출생하였다. 그의 가문은 그의 조부 때까지는 안동의 향리(鄕吏) 등을 지내오다가, 병부상서(兵部尙書)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오른 그의 아버지 효인(孝印) 대에 이르러 비로소 대가(大家)로 부상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16세가 되던 해에 음서(蔭敍)로 처음 관직에 진출하였다. 이후 누차 승진하면서 문관과 무관,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특히 몽골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때... 2. 삼별초를 진압하다. 김방경이 고려를 대표하는 무장이 된 것은 삼별초(三別抄)를 진압하는 작전을 총괄하면서부터였다. 고려의 최고 정예부대였으나 실제로는 무신집권자의 사병처럼 양성되었던 삼별초는 고려 정부가 몽골에 투항하는 데에 반발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고려 조정이 몽골과의 약속에 따라 강화도를 떠나서 개경으로 향하려던 1170년(원종 11)의 일이었다. 배중손(裵仲孫)이 이끈 삼별초는 강화도를 이탈하여 남쪽으로 향하여 진도(珍島)를 거점으로 삼았다. 김방경은 군사를 이끌고 남진하던 삼별초를 추격하였으며, 그들이 진도에 자리... 3. 일본 원정에 나서다. 삼별초의 항쟁이 진압되기까지를 계산에 넣으면 무려 40년에 달하는 긴 전쟁 끝에 마침내 고려를 복속시킨 몽골제국의 다음 목표는 바다 건너 일본이었다. 그리고 이 작전에는 몽골군과 함께 항복한 한군(漢軍), 그리고 고려군이 주력으로서 동원되었고, 고려는 일본 원정을 위한 전초기지가 되었다. 이제까지 몽골의 적대국이었던 고려는 말하자면 몽골-고려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전쟁에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1274년(원종 15), 즉 삼별초가 소탕된 바로 이듬해, 새로운 전쟁의 준비가 시작되었다. 원의 황제 쿠빌라이는 일본 원정을... 4. 거듭된 무고의 시련과 불굴의 기개 삼별초 진압과 일본 원정을 거치면서 고려의 군권을 오로지 한 그였지만, 그 이면에는 권세에 따르는 견제에도 크게 시달려야 했다. 그의 행적에는 무수히 많은 무고가 뒤따랐고, 이는 그에게 모진 시련을 겪게 하였다. 그를 모함한 자들 가운데에는 고려인이 대부분이었으나, 그의 실력을 견제하고자 했던 몽골군의 원수들이 이를 악랄하게 이용할 때가 많았다. 1270년(원종 11년) 진도의 삼별초를 공격할 때, 몽골군을 이끌었던 아카이[阿海]는 김방경이 삼별초와 내통하고 있다는 참소를 믿고 그를 개경에 압송하도록 했다. 곧 무고... 5. 덕과 나이와 작(爵)을 모두 누리다. 그가 관직에서 물러난 것은 1282년(충렬왕 8)이었지만 그가 사망한 것은 그로부터도 20년 가까이 흐른 뒤인 1300년(충렬왕 26)이었다. 향년 89세였다. 당시로서는 매우 보기 드물게 장수했던 것이다. 이제현(李齊賢)의 아버지인 이진(李瑱)이 지은 김방경의 묘지명에서는 그가 누린 복과 영예를 다음과 같이 칭송하였다. 더하고 덜 것 없이 그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라고 생각되어, 이를 인용해본다. “대저 천하를 통틀어 언제나 존중되는 것이 세 가지가 있으니, 덕(德)이 하나이고, 나이[齒]가 하나이고, 작(爵)이 하나이다. 군자 31 김방경의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고려사』 열전에서는 그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먼 후손이라고 밝혀두었다. 1212년(강종 원년) 출생하였다. 그의 가문은 그의 조부 때까지는 안동의 향리(鄕吏) 등을 지내오다가, 병부상서(兵部尙書)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오른 그의 아버지 효인(孝印) 대에 이르러 비로소 대가(大家)로 부상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16세가 되던 해에 음서(蔭敍)로 처음 관직에 진출하였다. 이후 누차 승진하면서 문관과 무관,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특히 몽골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때... 김방경 안동김씨 충렬공 김방경 2022.11.13 티스토리 검색 더보기 여행 크리에이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