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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eubidap.tistory.com 영원의속삭임/whisper of eternity 인조의 아들이자 소현세자의 동생.. 봉림대군.. 효종 배경으로 한 얘기가 아닌가 싶다. 병자호란을 다루는 컨텐츠들을 보면,, 주로 인조, 소현세자에 촛점을 맞춘 경우가 많은데 이 드라마는 소현세자 인듯 하나...나중에 주인공이 왕이 될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소현세자의 동생, 나중에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이 모델아닌가 싶기도 하다. 봉림대군.. 효종 조선의 17대... 조선 인조 소현세자 병자호란 세작 효종 봉림대군 2024.01.23 블로그 검색 더보기 reaction-life.com 리액션 조선의 제 16대 임금, 소심한 왕 인조 1. 인조는 누구인가? 조선의 14대 임금 선조의 손자인 정원군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5대 광해군과는 숙부와 조카 사이로 훗날 인조반정을 계기로 16대 왕이 됩니다. 인조는 광해군에 대한 감정이 매우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살턴 집터가 왕의 기운이 서린 곳이라는 말을 듣고 정원군의 집안을 초토화 시켜버렸거든요. 인조의 동생은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자살하고, 아버지 정원군도 이런 일 때문에 병을 얻어 죽게됩니다. 광해군 때문에 소중한 가족들을 잃은 인조의 입장에서 광해군이 얼마나 미웠겠어요. 그러던 와중 실리 2. 인조 시대의 사건 (1) 인조반정 (1623년) 실리 보다는 명분을 더 중요시 했던 그 시절, 조선에서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받아 들일 수 없었던 서인들은 인조를 앞세워 왕위를 찬탈합니다. 그리고 광해군의 중립외교 대신 명과 친하게 지내고, 후금을 배척한다는 친명배금 정책을 펴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 후금은 계속 강해지고 있었던 반면 명나를 점점 쇠약해 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조선의 친명배금 정책은 이를 못 마땅해 했던 후금의 조선 침략의 명분이 되었습니다. (2) 이괄의 난 역사적으로 많은 혁명 뒤에는 항상 논공행상에 대한 논란이 있어... 3. 평가 인조 시대 업적은 사실 거의 찾아 볼수가 없고 사건 사고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소심하고 비겁한 황이라고 하면 선조와 인조를 꼽을 수가 있는데 그래도 선조는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인조는 왕의 적통을 이어 받은 것이 아니고 반정으로 왕이 된 것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왕의 자리를 빼앗길까 조바심을 느꼈고 특히 아들이 소현세자가 후금에 인질로 잡혀갔지만 후금을 배우고 외교 역할을 잘 하자 이것 마저도 질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소현세자가 귀국... 조선의 14대 임금 선조의 손자인 정원군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5대 광해군과는 숙부와 조카 사이로 훗날 인조반정을 계기로 16대 왕이 됩니다. 인조는 광해군에 대한 감정이 매우 좋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살턴 집터가 왕의 기운이 서린 곳이라는 말을 듣고 정원군의 집안을 초토화 시켜버렸거든요. 인조의 동생은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자살하고, 아버지 정원군도 이런 일 때문에 병을 얻어 죽게됩니다. 광해군 때문에 소중한 가족들을 잃은 인조의 입장에서 광해군이 얼마나 미웠겠어요. 그러던 와중 실리 2023.11.21 blog.naver.com 숲샘 인조, 소현세자, 강빈 15 정축화약’ 중 기막힌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대(인조)의 장자(소현세자·1612~1645)와 다른 아들(봉림대군·효종), 대신들의 아들(혹은 동생)을 인질로 삼는다…”(<인조실록> 1637년 1월28일) 이 조항에 따라 소현세자와 강빈은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심양(당시 청나라 수도)에 도착한 소현세자 일행은... 2024.02.20 blog.naver.com 책블리 유니버스 인조 가계도 책으로 역사적 사실, 핵심 살펴볼게요. 20 왕 '선조'의 손자이자 광해군과는 숙부와 조카 사이였어요. 출처:출처: <tvn D ENT 벌거벗은 한국사> 유튜브 당시 광해군의 견제 때문에 인조 아버지, 동생을 잃고 난 후 인조는 서인과 함께 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요. 인조 가계도를 보면 인조 재위 기간은 1623년~1649년으로 인조는 부인 총 5명... 2023.11.20 fmkorea.com "선조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은 광해군" 를 볼때마다 인조가 광해군에게 당한것 역시 생각남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나름대로는 노력함. 이 정원군의 아들들이 인조로 유명한 '능양군' 이 있고 또 다른 아들이자 인조의 동생으로 '능창군' 이라는 사람이 있었음. 능창군은 말 잘타고 궁마술을 좋아하는 활발한 성격의 젊은이... 2023.12.22 웹문서 검색 더보기 조선의 대군으로 태어나, 대군으로 천수를 다하고 죽은 인물들은 누가 있을까?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개인적으로 인조 반정~이괄의 난 배경 사극도 재밌을듯한데 - 영화/TV - 에펨코리아 gall.dcinside.com mgallery weverse 와 저 행님 드래곤볼 셀 그 인조인간18호 동생? 닮았네 ㄷㄷ 의상때문인가 ㅋㅋㅋㅌ 2024.03.01 전체보기 남한산성) 능원대군(인조 동생) 죽는 각인가유...? 손톱기른 리붕이 동생한테 인조손톱 받았다ㅋㅌ 통합웹 더보기
서비스 안내 스토리의 글을 대상으로 검색결과를 제공합니다. 자세히보기 페르소나 라이프 분야 크리에이터 "괜찮아, 나는 울 엄마 반대로만 하면 돼!" 4 운다고 돈을 걸었지만 나는 내가 혹여 눈물을 찔끔거리다가 비싸게 붙인 인조 속눈썹이 떨어질까 봐 걱정이 됐다. 얼마 전 며느리가 될 장민이가 말해줬는데...겪어봤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나는 4남매 중 장녀로서 홀어머니와 함께 동생 셋과 살다 보니 남동생들이 군대를 갈 때나 대학교를 들어가고 졸업을 할... 브런치북 나도 이제야 어른이 되는 걸까 시어머니 어른 며느리 2024.04.22 브런치스토리 검색 더보기 www.48lrc.com 포도남 잘못된 도망자, 조선 16대왕 인조'이종'이야기 (feat. 인조반정, 병자호란, 이괄의 난) 이종, 능양군 (1623~1649) 사실 인조의 어린 시절은 사료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능양군으로 봉해진 이후의 기록이 대부분이죠. 인조반정을 주도했던 능양군은 선조의 손자이자, 광해군의 배다른 조카였습니다. 항상 왕권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광해군은 자신과 같은 후궁소생의 자녀들의 늘 견제하곤 했습니다. 특히 정원군의 아들인 능창군(능양군의 동생)은 군왕의 기질이 다분하다는 말을 들을 만큼 총명하였고,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다고 할 만큼 다재다능한 인재였습니다. 어느 날 정원군의 가족이 있는 집터가 왕의 기운이 서린 곳이라는 말을... 인조반정 (1623) 당시 광해군에게 대적했던 세력이 있었는데, 바로 서인세력이 있었습니다. 광해군의 폐모살제와 중립외교를 비판하였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서인세력은 대의명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세력으로 임진왜란도 아버지처럼 생각하는 명군이 도와주었기에 국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세력이었습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이 임진왜란 때 만력제가 다스리는 명군이 참전했기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죠. https://www.48lrc.com/entry/manlyeogjes-story 임진왜란의 또 다른 영웅? 명나 인조 (1623~1649) 영화 남한산성 '인조' 인조는 인조반정의 명분이었던 중립외교를 버리고 친명배금(명과 친하고 금나라를 배척)의 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하지만 광해군의 중립외교 때도 마찬가지로 명나라의 세력은 점점 약해지는 반면 국호를 청으로 바꾼 후금은 명나라를 압박하며 거대한 나라로 성장하는 중이었죠. 안타깝게도 인조와 서인세력은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무조건적인 명나라와의 사대만을 주장합니다. 이괄의 난 (1624) 드라마 화정 '이괄' 인조는 집권초기에 큰 반란이 일어나는데, 앞에서 언급하였던 이괄이라는 자는 인조반정을 주도했던 핵심인물이었습니다. 반정군을 진두지휘하며 큰 공을 쌓았죠. 하지만 인조반정에 대한 논공행상 중 1등 공신이 아닌 2등 공신으로 책봉이 되고, 외지인 평안도 북방지역으로 발령을 받게 되면서 인조에 대한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불만이 집권세력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이괄을 견제하던 서인이 '이괄의 아들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라며 인조를 몰아세우게 되죠. 이에 이괄의 아들을 직접 체포하기... 정묘호란 (1627) 이에 후금은 중립외교를 펼쳤던 광해군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하에 3만의 기병으로 조선을 침략합니다. 인조는 그들이 기동력을 앞세워 쳐들어온 것을 알아채고는 소현세자에게 분조를 맡기고, 강화도로 피난을 떠나게 되죠. 조선군은 후금군에 맞서 싸우고 퇴각하고를 반복했습니다. 사실 청은 조선을 정벌하기 위해 내려온 것은 아니었죠. 위협만 주기 위해 3만의 병력을 이끌고 내려온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군의 저항에 시일이 길어지며 교섭을 하게 되죠. 인조는 강화도로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후금은 몽골군이기에 바다에서... 병자호란 (1632) 정묘호란 후 5년이 지나고, 명의 세력은 점점 더 약해졌으며, 후금의 황제인 '홍타이지'는 국호를 후금에서 청으로 바꾸고 스스로를 황제의 국가로 칭하며 조선에게 형제국가가 아닌 군신관계를 요구하며 압박합니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신하의 나라가 되라는 것이죠. 게다가, 홍타이지의 청나라 황제 즉위식에 각국의 사신들이 와서 머리를 숙여 황제에게 예를 갖추었으나, 조선에서 사신으로 간 나덕헌과 이확은 두 황제를 섬길 수 없다며 거절합니다. 이 두 사신은 엄청난 구타를 당한 뒤 조선임금의 세자를 볼모로 보내라는 청황제... 병자호란 후 인조는 선조와 같이 전쟁 후 자신의 무능을 질투로 표출하는데, 그 질투의 화살은 바로 자신의 아들인 소현세자를 향하게 됩니다. 8년간 청나라에 볼모생활을 한 소현세자는 혹독한 청나라의 대우에도 꿋꿋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행하게 되죠. 이러한 소현세자가 맘에 들었는지 청에서는 소현세자의 능력과 인품을 좋게 보았고, 황실행사에도 초대하는 등 훌륭한 외교관으로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척박한 땅에서 스스로 농사를 지어 이를 팔아 이문을 남기고 남긴 이문으로 청나라에 인질로 간 조선인들 사서 조선... 7 사실 인조의 어린 시절은 사료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능양군으로 봉해진 이후의 기록이 대부분이죠. 인조반정을 주도했던 능양군은 선조의 손자이자, 광해군의 배다른 조카였습니다. 항상 왕권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광해군은 자신과 같은 후궁소생의 자녀들의 늘 견제하곤 했습니다. 특히 정원군의 아들인 능창군(능양군의 동생)은 군왕의 기질이 다분하다는 말을 들을 만큼 총명하였고,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다고 할 만큼 다재다능한 인재였습니다. 어느 날 정원군의 가족이 있는 집터가 왕의 기운이 서린 곳이라는 말을... 남한산성 호란 인조반정 소현세자 인조 병자호란 정묘호란 이괄의 난 조선 인조 조선 16대왕 2023.08.30 티스토리 검색 더보기 story.kakao.com 유광효ㆍ설악봉정 유광효ㆍ설악봉정 - 카카오스토리 19 쫓겨난 고려 21대왕 희종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세종의 삼남 안평대군, 선조의 첫째 서자 임해군, 인조의 동생 능창대군, 흥선대원군 손자 이준용ᆢ등 11명의 왕족이 교동으로 유배당했다가 풀려나거나 사사되었다... 2023.11.20 카카오스토리 검색 더보기 라이프 크리에이터 보기
청솔조기축구회,청솔FC blog.naver.com/leonseol 네이버 블로그 국립한국복지대학교 인조 잔디 축구장을 홈구장으로...연령의 형님, 친구, 동생등 많은 사람들과 함께... 철인코크스 cafe.daum.net/IronManCokeFC Daum 카페 가족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가족처럼 지내실 형님, 동생, 친구분들을 모십니다.연락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