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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u.wiki 인조반정 - 나무위키 인조반정(仁祖反正)은 조선의 4대 반정(쿠데타)의 하나로, 1623년 4월 11일(광해군 15년 음력 3월 12일) 서인 반정 세력이 광해군 및 대북 세력을 축출하고 왕의 조카인 능양군 이종을 새로운 왕으로 옹립 및 추대한(인조) 사건이다. 계해년에 일어나서 계해반정 또는 계해정사(癸亥靖社)라고도 한다. 주도자는 왕이 되는 능양군과 흔히 4대장으로 일컬어지는 김류, 이귀, 신경진, 이서와 최명길이다. 시기 1623년 3월 12일(음력) 장소 조선 한성부 창덕궁 및 인근 원인 광해군의 폭정(봉산옥사, 계축옥사 등), 광해군의 對명-후금간 중립외교 주요인물 지휘관, 능양군, 신경진(효성령별장), 김류(거의대장), 참가자, 이서, 이귀, 김자점, 최명길, 구굉, 이괄 등 병력 불명 | 2,000명 개요 반정의 시작 반정의 진행 반정의 결과 반정의 영향 인조반정을 다룬 미디어들 관련 문서 2024.05.13 웹문서 검색 더보기 조선왕릉 - 나무위키 장유(조선) - 나무위키 story.kakao.com 오소재민박강병진 오소재민박강병진 - 카카오스토리 이방원의 왕자의 난,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진성대군의 중종반정, 능양군의 인조반정 등을 조선 4대 반정이라 한다 폐모살제는 광해군이 계모 인목대비를 폐비하고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살해한 사건이다 인목... 2024.05.13 카카오스토리 검색 더보기 rlaxogjs20.tistory.com 이야기 하는 사람 조선시대 4대사화 : 무오, 갑자, 기묘, 을사 사화란? 사화는 조선 전기에 일어났던 주요한 정치적 충돌이자 숙청이다. 파벌을 이룬 정치세력이 반대파에게 몰려 화를 입은 정치적 사건으로, 역사적으로 주요한 사화로는 순서상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가 있었다. 사화 앞의 이름은 해의 간지에 따라 정해졌다. 한국사 연구에서는 훈구파가 사림파를 탄압하는 사건으로 평가되어져 왔으며, 사화별로 다르게 해석해야한다는 견해도 존재하고 있다. 사화가 일어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시대의 기틀 유학, 유학은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유학자들 중 정치에 참여하는 이들도 많았고, 그들 사이에서는 의견 대립이 자주 일어났다. 세조시기부터 유학자들은 그들끼리 파벌을 만들었는데, 김종직, 김일손 등의 신진 학자를 중심으로 한 사림파와 정인지, 신숙주, 서거정 등과 같이 기존에 세력을 잡고 있던 훈구파가 대립하였다. 그밖에도 세조의 정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학문의 연구로 세월을 보내는 선비들이 따로 뭉쳐 세력을 이루었다. 이들이 이룬 파벌간의 대립은 날로 심해져 마침내 사화를... 4대 사화란? 사화는 사화라는 틀로 묶여있긴 하나 개별적 성격은 서로 달리한다. 무오사화와 기묘사화는 왕과 대신이 신진 관원을 숙청한 사건이었으며, 갑자사화는 왕이 일방적으로 포악한 정치를 행한 사건이었다. 을사사화는 외척을 중심으로 형성된 신하들 사이의 대립을 말한다. 특이할만한 것이라면 다른 사화들은 왕이 주요한 영향을 행사하였으나, 을사사화에서만큼은 수렴청정을 하였던 문정왕후가 주요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무오사화 : 조선에서 발생한 첫번째 사화이다. 1498년 성종실록의 편찬 과정에서 김일손의 사초에 세조 사화는 조선 전기에 일어났던 주요한 정치적 충돌이자 숙청이다. 파벌을 이룬 정치세력이 반대파에게 몰려 화를 입은 정치적 사건으로, 역사적으로 주요한 사화로는 순서상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가 있었다. 사화 앞의 이름은 해의 간지에 따라 정해졌다. 한국사 연구에서는 훈구파가 사림파를 탄압하는 사건으로 평가되어져 왔으며, 사화별로 다르게 해석해야한다는 견해도 존재하고 있다. 기묘사화 갑자사화 무오사화 을사사화 사화란? 사화가 일어나게 된 이유 4대 사화란? 2023.10.05 블로그 검색 더보기 dreamingwriter.tistory.com 얌얌스톤의 거북이샬롱 소현세자의 죽음, 조선시대 최초의 의문사 ■ 소현세자의 미스터리한 죽음 소현세자는 8년 만의 인질 생활을 끝내고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여러 가지 의문을 남기며, 공식적인 병명은 학질, 즉 말라리아였습니다. 그러나 실록에는 독살의 의심이 갈 정도로 그의 죽음이 의문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인조실록에 남겨진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몸이 전부 검은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멱목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 ■ 인조는 왜 소현세자를 견제했나? 인조는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항복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지요. 소현세자는 인조의 아들로,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청나라에서 보내고 마침내 소현세자는 8년 만에 조선으로 귀국을 했지요. 아들이 돌아오면 반기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소현세자는 그렇게 환대받지 못했습니다. 바로 인조는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조선의 외교관 역할을 하며,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천주교를 수용하는 등의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더욱 이상한 것은 바로 소현세자... ■ 인조가 소현세자의 죽음에 실제로 관여했나? 역사적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데요. 소현세자는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다가 8년 만에 귀국했지만, 2개월 만에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독살설이 제기되었지만, 명확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인조는 소현세자를 독살할 동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조선의 개혁을 추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인조의 권력을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당시 소현세자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고, 귀국 전부터 이미 병을 앓고 있었다 ■ 며느리 강빈(소현세자의 아내)을 죽인 인조 소현세자의 죽음은 인조에게 왕위를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는데요. 소현세자가 죽었으니 소현세자의 아들(원손)을 '세손'으로 잇게 하는 게 정상이겠지만 인조는 훗날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을 후계로 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에 인조는 소현세자의 가계를 아예 대통에서 배제할 결심으로 강빈과 세자의 아들들까지도 모조리 제거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강씨에 대한 누명 소현세자 사후, 궁내에서 누군가 소용 조씨를 저주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물론 이는 소용 조씨의 자작극이었으나, 인조는 이 사실을 알면서... 2 소현세자는 8년 만의 인질 생활을 끝내고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여러 가지 의문을 남기며, 공식적인 병명은 학질, 즉 말라리아였습니다. 그러나 실록에는 독살의 의심이 갈 정도로 그의 죽음이 의문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인조실록에 남겨진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몸이 전부 검은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오므로, 검은 멱목으로 그 얼굴 반쪽만 덮어... 소현세자 죽음 소현세자 아내 소현세자 강빈 인조 소현세자 인조 며느리 죽음 인조 만행 소현세자 독살 인조 독살 의혹 강빈 죽음 능양군 인조 2024.01.24 storypuzzlepieces.tistory.com 이야기퍼즐조각 맞추기 [사건 이야기] 조선시대 성공한 유일한 4개의 쿠데타 (1) 무인정사 #왕자의 난, 무인정사의 원인 왕자의 난이라고도 불리는 무인정사는 조선개국 직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무려 조선 태조대에 왕자인 이방원이 중심이 되어 이복동생 이방석과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여 왕위를 찬탈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개국과 동시에 반란이 일어난 걸까요. 무인정사의 원인은 보통 두 가지로 꼽습니다. 첫째는 태조 이성계의 무리한 막내 세자책봉이고, 둘째는 정도전의 병권집중운동과 요동정벌로 인해 왕자와 공신 세력을 위축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첫째 이유가 주된 이유로 꼽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족보를 살피면... #왕자의 난, 무인정사의 전개과정 1398)년에 이방원이 주도하여 일으킨 난으로 왕세자 왕자의 난, 방원의 난이라고도 불립니다. 무인정사에 참여한 인물에는 이성계의 막내동생 이화, 이성계의 이복형 이원계의 아들 이천우, 이성계 누이의 의붓아들 조온, 3남 이방의와 4남 이방간, 사위 이저와 그의 아버지 이거이 등입니다. 참여한 인물들을 살펴보면 신의왕후 소생 왕자들과 방계 왕족들이 태조에게 반기를 든 왕실 내분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이 개국되고 막내 이방석이 세자로 책봉되며 권력의 변방으로 쫓겨나야 했던 이방원이 7년 후 아버지 태조가 병환에 #왕자의 난, 무인정사의 2차전 2차 왕자의 난 제2차 왕자의 난도 있었습니다. 무인정사를 제1차 왕자의 난이라고도 불리는 이유입니다. 제2차 왕자의 난은 1400년 이방원의 바로 위의 형 이방간이 일으킨 난으로 참모였던 이의 이름을 따 박포의 난이라고도 불립니다. 이방간은 야심은 많았으나 특출난 능력이 없어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재주라고 하나 있는 건 가병들 데리고 패싸움하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여튼 이방간이 이방원을 향한 질투로 치를 떨고 있을 때 제1차 왕자의 난에서 공을 세운 박포가 자신이 1등 공신이 아니라 2등 공신이라는 점에 강하게 불만을 품다가 열... 왕자의 난이라고도 불리는 무인정사는 조선개국 직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무려 조선 태조대에 왕자인 이방원이 중심이 되어 이복동생 이방석과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여 왕위를 찬탈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개국과 동시에 반란이 일어난 걸까요. 무인정사의 원인은 보통 두 가지로 꼽습니다. 첫째는 태조 이성계의 무리한 막내 세자책봉이고, 둘째는 정도전의 병권집중운동과 요동정벌로 인해 왕자와 공신 세력을 위축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첫째 이유가 주된 이유로 꼽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족보를 살피면... 신덕왕후 정도전 이방원 박포 왕자의난 이방석 세자책봉 이방간 조선 4대 반정 무인정사 2023.12.26 sk2.sknanzn.pw sk1st 꽃 나무 별 조선왕조 계보, 조선시대 왕 순서, 이름 45 다졌습니다. 4대 세종 이도 –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천문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를 비롯한 다수의 업적을 남긴 조선의 대표적인 성군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와 영화 "천문"에서 자세히 다뤄졌습니다. 그는 과학기술과 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5대 문종 이향 / 6대 단종 이홍위... 정조 조선왕조 대한제국 광해군 세종대왕 영조 연산군 선조 태조 이성계 조선왕 2024.05.27 통합웹 더보기
서비스 안내 스토리의 글을 대상으로 검색결과를 제공합니다. 자세히보기 truth-sayer.tistory.com 트루세이어 하늘의 전쟁과 대환란의 시작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나는 날) 4 영화를 통해 자주 다뤄졌었는데, 그만큼 인조 시대의 이야기가 시나리오로 녹여내기에 용이한 드라마틱한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조는 조선의 4대 반정으로 불리는 인조반정에 의해 쿠데타로 왕위에 오른 인물인데, 광해군 때의 강한 국방력과 중립 외교를 이어가지 않고 정세를 외면한 채 후금(청나라)을... 666 예수님 재림 신세계질서 적그리스도 휴거 대환란 다니엘12장 요한계시록12장 7년환란 2024.03.20 티스토리 검색 더보기 story.kakao.com 배대열 배대열 - 카카오스토리 거치지 않고 즉위한 최초의 왕이며, 반정(反正)을 일으켜 왕권을 찬탈한 첫 임금이기도 합니다. 조선의 제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의 둘째 왕자로 태어났고, 제 6대 임금인 단종의 숙부였으며 즉위 전의 호칭은 수양... 2024.05.18 카카오스토리 검색 더보기 brunch.co.kr 옥소장 13. 명종은 왜 힘이 없었을까? - 조선 왕에 관한 27가지 궁금증 있던 대부분이 반정에 참여해 다시 그 자리를 유지하게 됩니다. 중종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자리에 오른 것이고 왕권은 약해졌죠. 그런 이유로 중종은 조광조...인종이 죽고 경원대군이었던 명종이 조선의 13대 왕으로 등극하자 윤임, 유관, 유인숙 등 대윤과 관련된 자들이 대대적인 숙청을 겪게 되니 조선 4대 사화... 문정왕후 명종 조선 2023.12.21 브런치스토리 검색 더보기